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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모음

1월의 시모음

by hanu4 202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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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시모음

1월은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행위 그 자체로 상징성을 지니는 시간입니다. 계절로 보면 가장 차갑고 척박해 보이지만, 의미의 층위에서는 오히려 가장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품고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1월을 단순한 월명이 아니라 ‘시작’, ‘백지’, ‘침묵 속의 함성’이라는 이미지로 확장해 왔습니다.

이번 1월의 시모음은 서로 다른 시선과 언어를 가진 시인들이 같은 달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비교하며 읽는 구성으로 정리했습니다. 각 시마다 전문 인용과 함께 감상과 해설을 덧붙이고, 동일 시인의 경우에는 시인 프로필을 하나의 섹션으로 묶어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이해인 〈1월의 시〉

1월은 가장 깨끗하게 찾아온다
새해는 백지처럼 하얗게 찾아온다
올해는 흐르는 강물처럼 살고싶다
올해는 태양처럼 열성적으로 살고싶다

올해는 먹구름이 몰려와 비도 종종
내리지만 해살이 가득한 날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일한 기쁨이 수북하게 쌓이고
사랑이란 별하나 가슴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 시에서 1월은 ‘가장 깨끗한 시간’으로 형상화됩니다. 백지라는 표현은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이해인은 새해의 소망을 과장되거나 추상적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강물과 태양이라는 일상적 자연 이미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이는 삶의 태도를 선언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은 유연함과 지속성을 의미하고, 태양처럼 산다는 것은 열정과 책임을 상징합니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먹구름과 해살의 대비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에 가깝습니다. 고단한 날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일한 기쁨과 사랑이라는 구체적 보상을 희망하는 결말은 독자에게 실질적인 위안을 제공합니다.

오세영 〈1월〉

1월이 색갈이라면
아마도 흰색 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깅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새해를 여는 시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1월의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오세영의 〈1월〉은 감각의 확장을 통해 달을 해석하는 시입니다. 색, 음악, 말씀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차례로 제시하면서 1월의 본질을 다층적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라는 표현은 인간이 시간 앞에서 느끼는 겸허함을 드러냅니다. 1월은 인간이 주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어지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음악의 비유에서는 속삭이는 저음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직 본격적으로 울려 퍼지지 않은 가능성의 소리로 읽힙니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목소리로 귀결되는 구조는 시작을 강요가 아닌 돌봄의 언어로 전환시키며, ‘침묵 속의 함성’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도종환 〈1월의 시〉

시작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설레임을 안겨줍니다

첫걸음을 내딛는
아기처럼
살며시 조심스럽게
1월을 시작합니다

도종환의 시는 짧지만 1월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시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감정에 집중하며, 그것을 아기의 첫걸음에 비유합니다. 여기에는 조심스러움과 희망, 그리고 실패의 가능성까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 시의 미덕은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한다는 점입니다. 1월은 거창한 결단의 시간이 아니라, 살며시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새해 결심에 지친 독자에게 오히려 위로로 다가옵니다.

안재동 〈1월의 해와 하늘〉

수십 억 년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날마다 변함없이 뜨고 지는 해
해는 똑같은 해인데
12월에 떠오르는 해는
낡아 보이고
1월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
적과 동지
아름다움과 추함
빠름과 느림
배부름과 배고픔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나약함
본질은 같으나 느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무엇들

세상에 너무 많은
1월 어느 날의 청명한 하늘
12월 어느 날의 청명했던 바로
그 하늘이 아닌

이 시는 시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해와 하늘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의 감정과 해석이 그것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는 점을 반복과 대조로 설명합니다. 1월의 해가 새로워 보이는 이유는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변화라는 통찰이 이 시의 중심입니다. 나열되는 대비어들은 삶의 모든 국면이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1월이라는 시점이 그런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용혜원 〈1월〉

1월은 가장 깨끗하게 찾아온다
새로운 시작으로 꿈이 생기고
웬지 좋은 일이 있을것만 같다

올해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기대감이 많아진다

올해는 흐르는 강물처럼 살고 싶다
올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올해는 먹구름이 몰려와
비도 종종 내리지만
햇살이 가득한 날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일한 기쁨이 수북히 쌓이고
사랑이란 별하나
가슴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용혜원의 〈1월〉은 독자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새해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기대, 설렘, 소망이라는 키워드를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도,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특히 ‘웬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는 문장은 논리보다 감정에 기대는 새해의 심리를 정확히 포착합니다. 이 시는 다짐이라기보다 바람에 가깝고, 그래서 부담 없이 읽히며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채 〈중년의 가슴에 1월이 오면〉

시작이라는 말은
내일의 희망을 주고
처음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갖고 꿈을 키울때
그대 중년들이여
꿈이 있는한 당신은
늙지 않습니다

뜻이 있어도 펼치지 아니하면
문은 열리지 아니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아니하면
길을 가지 않습니다

책이 있어도 읽지 아니하면
무지를 면치 못하고
뜰이 있어도 가꾸지 아니하면
꽃은 피지 않겠지요

다시 돌아가
처음으로 돌아가
그대, 중년들이여
‘이나이에 뭘 하겠어’라는
포기의 말은 하지 않기로해요

이채의 시는 1월을 세대의 문제와 연결합니다. 특히 중년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호명하며, 시작의 의미가 젊음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반복되는 조건문 구조는 생각과 실천의 간극을 지적하며, 1월을 행동의 달로 정의합니다. 이 시에서 1월은 시간의 출발점이자 태도의 전환점입니다.

시인 프로필 정리

  • 이해인: 일상의 언어와 종교적 사유를 결합한 서정시로 잘 알려진 시인으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달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 용혜원: 사랑과 인생, 계절을 주제로 한 감성적인 시를 통해 대중적 공감을 얻어온 시인으로, 부드러운 어조와 반복 구조가 특징입니다.
  • 이채: 중년과 삶의 태도를 주제로 한 성찰적 시편을 다수 발표하며,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화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결론

1월을 노래한 시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움’을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시는 백지의 가능성을, 어떤 시는 침묵 속의 울림을, 또 어떤 시는 행동을 촉구합니다. 이 시모음은 1월이 단순히 달력의 시작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점검하는 계기임을 보여줍니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시인들은 1월을 가장 따뜻한 언어로 불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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