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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언어 어휘

가을 시 모음 - 이해인 짧은 가을시

by hanu4 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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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 모음 - 이해인 짧은 가을시

가을의 문턱에서 – 도입부

가을은 시인들의 계절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식어가고, 하늘이 높아지며, 마음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감정이,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천천히 얼굴을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가을 시 모음
가을 시 모음

이번 글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이해인 수녀의 짧은 가을시 모음을 중심으로, 시의 세계와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결을 깊이 있게 감상해보겠습니다. 그녀의 시는 단순한 계절의 풍경을 넘어, ‘삶과 신앙, 인간과 사랑’을 잔잔하게 풀어내며 가을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가을 시 모음

가을바람 –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 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단순히 자연의 ‘가을바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성숙과 자기 성찰을 상징합니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라는 표현은 잃음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결실의 의미를 내포하며, 그것은 곧 삶의 인내와 성장의 과정입니다. 이해인의 시에서 ‘바람’은 늘 하느님 혹은 영적인 각성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특히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구절은, 세속의 소음을 비워내고 자신 안의 깊은 기도를 찾는 수도자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연의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는, 신앙과 자기 성찰의 끝에서 도달한 평화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시인 프로필

  • 이름: 이해인(李海仁)
  • 출생: 1945년 경상남도 진주
  • 직업: 천주교 수녀, 시인
  • 대표작: 『민들레의 영토』, 『너를 위하여 기도한다』
  • 문학 세계: 자연과 신앙, 인간의 내면 성찰을 따뜻하고 명징한 언어로 표현하는 시인. 일상적인 사물과 계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함.

나뭇잎 러브레터 – 이해인

당신이 내게 주신
나뭇잎 한 장이
나의 가을을
사랑으로 물들입니다.

나뭇잎에 들어 있는
바람과 햇빛과
별빛과 달빛의 이야기를
풀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한 장의 나뭇잎은
또 다른 당신과
나의 모습이지요?

이 가을엔 나도
나뭇잎 한 장으로
많은 벗들에게
고마움의 러브레터를
쓰겠습니다.

감상평과 해설

‘나뭇잎’이라는 자연의 상징을 ‘사랑’의 매개체로 변환시킨 시입니다. 이해인 시인에게 사랑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손에 쥔 한 장의 나뭇잎 속에도 세상과 하늘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며,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곧 사랑의 시작이지요. 이 시는 인간과 자연,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한 장의 나뭇잎에 비유하며, ‘감사’와 ‘연결’의 미학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러브레터’를 쓴다고 표현하지만, 그 편지는 잉크로 적지 않은, 마음으로 전하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가을에 – 이해인

가을에
바람이 불면
더 깊어진 눈빛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물들면
더 곱게 물든 마음으로
당신이 그립다고
편지를 쓰겠습니다

가을에
별과 달이 뜨면
더 빛나는 기도로
하늘을 향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더 넓게 사랑하는
기쁨을 배웠다고
황금빛 들판에 나가
감사의 춤을 추겠습니다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사랑의 순수한 확장과 영적 성숙을 노래합니다. 시적 화자는 ‘당신’을 향한 사랑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가을의 모든 풍경이 사랑의 매개로 등장하며, 바람·나뭇잎·별빛이 각각 사랑의 단계로 연결됩니다. 첫 연의 ‘눈빛’은 감정의 진심을, 두 번째 연의 ‘편지’는 표현의 따뜻함을, 세 번째 연의 ‘기도’는 사랑의 궁극적 형태를 상징합니다. 이처럼 ‘가을에’라는 시간적 배경은 인간의 사랑이 신성으로 승화되는 계절의 은유로 사용됩니다.



익어가는 가을 – 이해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매우 짧지만, 그 안에 인생의 완숙한 철학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는 ‘상실 이후의 성숙’을 의미하며, 인간의 삶 또한 이러한 순환 속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을은 단순한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익음’과 ‘결실’의 계절입니다. 이해인은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라고 표현하며, 진정한 사랑과 성숙은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이 시의 간결함은 오히려 그 깊이를 더합니다. 마치 수묵화의 여백처럼, 짧은 언어 안에 긴 사유가 머뭅니다.


가을 일기 – 이해인

잎새와의 이별에
나무들은 저마다
가슴이 아프구나

가을의 시작부터
시로 물든 내 마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조용히 흔들리는 마음이
너를 향한 그리움인 것을
가을을 보내며 비로소 아는구나

곁에 없어도
늘 함께 있는 너에게
가을 내내 단풍 위에 썼던
고운 편지들이
한 잎 한잎 떨어지고 있구나

지상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붉게 물들었던 아픔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별로 솟아오르는 기쁨을

나는 어느새
기다리고 있구나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그리움’과 ‘이별’을 다루지만, 슬픔보다는 ‘기다림과 수용’의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나무와 잎의 이별은 곧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유한 것이며, 떨어지는 잎은 지나간 사랑의 흔적이자 편지입니다. “붉게 물들었던 아픔들이 별로 솟아오르는 기쁨”이라는 구절은, 고통조차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게 하는 시인의 깊은 영성을 드러냅니다. 이해인의 가을은 단순히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감정 순환이기도 합니다.



가을 편지 – 이해인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나의 시간을 지켜보듯이

감상평과 해설

‘가을 편지’는 시간과 죽음,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철학적 시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답다”는 문장은 인생의 유한함을 긍정하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낙엽을 ‘무희의 마지막 공연’으로 표현한 시적 비유는, 사라짐조차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존엄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죽음’을 슬픔이 아닌 ‘완성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통찰이 돋보이며, 인생의 무상함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결론 – 가을, 침묵 속의 사랑

이해인 시인의 가을시는 단순한 계절시를 넘어 ‘삶의 철학서’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자연을 관찰하면서도 그 속에 인간의 영혼과 사랑의 본질을 투영합니다. 바람은 깨달음으로, 낙엽은 이별로, 그리고 익은 열매는 사랑의 완성으로 이어집니다. 가을은 그녀의 시에서 항상 ‘감사’와 ‘성숙’의 계절로 그려지며, 삶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신앙과 사랑이 자라남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해인의 가을은 ‘외로움 속의 평화’, ‘이별 속의 감사’, 그리고 ‘죽음 속의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단순히 가을 풍경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계절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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