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16개국 전쟁 기간, 22개국
625 전쟁은 냉전 초기 세계 질서가 격렬하게 충돌한 상징적 사건이자, 한반도에서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전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단순한 남북 간의 충돌을 넘어, 미국과 소련 중심의 양대 진영이 간접적으로 맞붙는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아래 각국이 병력·장비·의료·물자 등을 지원하며, 총 16개 전투병 파병국과 6개 의료·지원국이 참여한 ‘유엔참전 22개국 체제’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다국적 군사개입 사례로 기록됩니다. 625 참전국들은 자유 진영의 명분 아래 대한민국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와 군사적 손실이 발생했지만 한국의 생존과 재건의 토대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625 전쟁 기간과 전투병을 파병한 16개국, 의료·물자를 지원한 추가 6개국을 포함한 총 22개국의 구조, 비공식 참전국의 역할, 그리고 전쟁 사망자 수까지 종합적으로 정리합니다.
625 전쟁 기간
625 전쟁은 다음과 같은 기간적 흐름으로 구성됩니다.
- 발발일: 1950년 6월 25일
- 휴전일: 1953년 7월 27일
- 총기간: 3년 1개월(약 1128일)
전쟁은 북한의 기습 남침 단계, 인천상륙작전 이후 탈환 단계,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전선 재편, 교착전과 휴전 협상 단계라는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 북한군의 급속한 남하로 한강 이남까지 전선이 밀렸으나, 유엔군 개입과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했고, 이후 중공군 참전으로 인해 전선은 장기화되었습니다. 1951년 이후에는 전쟁 양상이 고착되며 지루한 참호전과 협상 기간이 이어졌고, 결국 1953년 맺어진 정전협정으로 전투가 멈췄습니다. 하지만 정식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정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625 전쟁 참전국 구조
625 전쟁에 참여한 국가는 크게 전투병 파병 16개국, 의료·지원 파견국 6개국, 그리고 비공식 참전·물자 지원국으로 구분됩니다.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파병한 국가는 총 16개국이며, 이어서 전쟁 수행 및 전후 복구 단계에서 의료·물자·장비·병원선을 지원한 6개국이 추가되어 총 22개국 체제로 확대됩니다.
625 참전 16개국(전투병 파병국)
다음 16개 국가는 실제 전투병을 한국 전선에 파병했습니다. 각국은 병력 규모나 장비 수준은 달랐지만, 한반도 전장에서 직접적인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큰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 미국
- 영국
- 캐나다
- 터키
- 호주
- 필리핀
- 태국
- 네덜란드
- 콜롬비아
- 그리스
- 뉴질랜드
- 에티오피아
- 벨기에
- 프랑스
- 남아프리카공화국
- 룩셈부르크
이 중 미국은 전체 유엔군 전력의 절대 다수를 담당했고, 영국·캐나다·호주 등의 영연방 국가들도 기갑·해군·공군 등 다양한 병종을 파견했습니다. 터키, 그리스, 에티오피아처럼 상대적으로 소규모 국가의 파병도 있었지만,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깊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625 참전 16개국 + 6개국 = 유엔참전 22개국
전투병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의료 지원·병원선 파견·구호 인력을 보낸 국가가 추가 6개국이며, 이들을 포함해 총 22개국으로 확장합니다.
- 스웨덴
- 인도
- 덴마크
- 노르웨이
- 이탈리아
- 독일
이 국가들은 전투 대신 야전병원 설치, 의료진 파견, 구호품 제공, 병원선 운영을 통해 인명 구조와 민간 지원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스웨덴은 '스웨덴 적십자병원'을 설치하여 수십만 명을 치료했으며,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병원선은 전장의 긴급 수술·치료에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비공식 참전 및 물자 지원국
공식적 참전국은 아니지만, 물자·지원 또는 타국 군대 소속으로 간접적으로 참여한 국가들도 존재합니다.
- 멕시코
- 아일랜드
- 푸에르토리코
- 수리남
- 콩고
이들은 독자적으로 전투병을 파견하지는 않았으나, 타국 군 소속으로 참전하거나 전쟁 중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멕시코계 미국인의 대규모 참전, 아일랜드인의 영국군 소속 참전, 수리남·콩고의 네덜란드·벨기에군 편성 참전 등이 대표적입니다.
전쟁 후 22개국 구조가 굳어진 배경
625 전쟁 직후에는 전투참가국 중심의 16개국만 ‘참전국’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전쟁의 지원 범주가 확장되고, 전투 외에도 의료·물자·전후 복구·외교 협력 등 다방면에서 기여한 국가들이 점차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전투 참여는 없었으나 전후 복구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지지를 통해 한국 재건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더해지며 정식 참전국 목록에 포함됩니다. 즉, 전쟁의 ‘직접 전투 참여 여부’에서 ‘종합적 지원 기여도’로 기준이 확대되면서 22개국 체제가 공식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25전쟁 사망자 수
전쟁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민간인 피해 또한 전례 없을 만큼 컸습니다. 사망자 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한국군: 약 13만 8천 명
- 유엔군: 약 4만 명
- 미국군 사망자: 약 3만 6천 명
- 북한군 및 중공군: 100만 명 이상 추정
- 한국 민간인 사망·실종: 100만 명 이상
정확한 민간인 피해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크지만, 전체 전쟁 사망자는 200만 명 이상으로 평가됩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의 파괴력과 전장이 넓게 분포된 점, 전선의 반복 변화, 무차별 폭격 등이 피해 규모를 극대화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결론
625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냉전 초기의 국제전으로, 총 22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하며 참전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16개 전투병 파병국은 전장에서 직접적인 희생을 감수하며 자유 진영의 승리를 위해 싸웠고, 6개 의료·지원국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며 후방의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비공식적 참전·지원국까지 포함하면 한국전쟁은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원이 모여 만들어낸 가장 상징적인 다국적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전쟁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멈췄지만, 한반도에 남긴 상흔과 분단의 현실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전국의 희생과 지원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재건에 뿌리 깊게 기여했으며, 지금도 국가 간 외교·안보 협력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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