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시 모음
11월은 가을의 아름다움과 겨울의 쓸쓸함이 한자리에 머무는 달입니다. 나뭇가지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잎이 매달려 있고, 길 위에는 이미 계절을 내려놓은 낙엽이 쌓입니다. 낮의 햇살은 잠시 따뜻하지만 해가 기울면 바람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풍경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기억이 떠오르고, 오래 연락하지 못한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며, 한 해 동안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11월의 시모음이 마음에 오래 남는 까닭도 이처럼 계절의 변화와 삶의 감정이 가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11월의 시 모음에서는 이원문, 유영서, 신창홍, 조유리, 전태련, 이세복, 손택수, 박수현의 작품을 함께 읽습니다. 같은 늦가을을 바라보지만 시선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추위 속에서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삶의 길목에서 쉬어 갈 자리를 찾습니다. 또 다른 시에서는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기다리거나, 모든 것의 쓸모를 따지는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여유를 돌아봅니다. 시 전문은 제공된 내용을 기준으로 수록했으며, 시인 프로필은 확인되지 않은 생애와 등단 이력을 덧붙이지 않고 수록 작품과 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현의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원문 「11월」 - 추위가 불러오는 오래된 기억
이제 추울 날만
또 한 해의 이 겨울이 얼마나 추울까
내리는 눈에 바람까지 불어 더 추울 것인데
얼마나 추울런지 문득 옛 생각까지그 여름날에 더웠던 생각
겨울이면 살 도려내는 듯 추웠던 생각
더운 날에는 물이라도 끼얹어었지
쌓인 눈에 더 내리는 눈보라 몰아치던 날은 어떻게 했나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들
지워지지 않는 그날들
주눅의 저녁연기 끊어질 무렵
멀건 김치 죽 한 그릇의 겨울 밤이 너무 길었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이원문의 「11월」은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는 일상적인 말에서 출발해, 몸과 마음에 남은 과거의 기억으로 들어갑니다.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수사보다 추위와 허기처럼 누구나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재가 정서를 이끕니다.
- 시인: 이원문
- 수록 작품: 「11월」
- 중심 소재: 겨울 추위, 눈보라, 저녁연기, 김치 죽
- 주요 정서: 겨울에 대한 걱정, 가난했던 시간의 고통, 지워지지 않는 기억
- 표현의 특징: 구어적인 문장과 반복을 통해 회상의 흐름을 전달합니다.

감상평
이 시의 11월은 낙엽이 아름다운 계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화자에게 늦가을은 곧 닥쳐올 추위를 먼저 걱정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첫 행의 “이제 추울 날만”에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체념이 스며 있습니다. 아직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몸은 이미 추웠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따뜻한 방과 넉넉한 식사를 당연하게 누릴 수 없었던 사람에게 계절의 변화는 감상의 대상이기 전에 견뎌야 할 생활의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김치 죽 한 그릇은 그 기억을 구체적으로 붙잡아 줍니다. 음식의 이름과 묽은 상태가 드러나는 순간, 추위는 배고픔과 겹쳐집니다. 겨울밤이 길었다는 표현 역시 단순히 해가 짧았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허기를 달래기 어려운 사람에게 밤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 기다림이 됩니다. 독자는 마지막 행에 도착한 뒤에야 앞부분에서 반복되던 겨울 걱정의 무게를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해설
작품의 흐름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과거의 회상으로 이동합니다. “얼마나 추울까”라는 물음이 “그날들”을 불러내고, 그 기억은 한 그릇의 음식과 긴 밤으로 좁혀집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날씨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끝으로 갈수록 화자만의 아픈 경험이 모습을 드러내는 구조입니다.
특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과 “지워지지 않는”은 서로 맞물리며 기억의 비자발성을 보여 줍니다. 잊고 싶다는 의지와 잊히지 않는 현실 사이의 간격이 시의 슬픔을 만듭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는 화자의 경험을 곧바로 시인의 실제 이력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추위가 어떻게 삶의 기억을 깨우는지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11월이라는 계절이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긴장을 되살리는 시간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유영서 「십일월의 뜨락에서」 - 쉬어 가는 것도 삶의 일부입니다
스산하게
바람 분다가랑잎 구르는
길목에
언뜻 스쳐 가는 그림자걸어온 삶의
애증인가
속내 풀어 놓고
발길 멈춘다사계의 길목에서
자연도 쉬어가잔다피한 적 없는
삶 데리고
놀 빛 짙은 산마루에
구름처럼 쉬고 싶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유영서의 「십일월의 뜨락에서」는 짧게 끊어지는 행과 여백을 통해 걸음을 늦추는 작품입니다. 바람과 가랑잎으로 시작한 풍경은 삶에 대한 회고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쉬고 싶다는 소망으로 모입니다.
- 시인: 유영서
- 수록 작품: 「십일월의 뜨락에서」
- 중심 소재: 바람, 가랑잎, 그림자, 산마루, 구름
- 주요 정서: 삶의 애증, 피로, 자기 성찰, 휴식에 대한 바람
- 표현의 특징: 짧은 행과 자연의 의인화를 통해 차분한 호흡을 만듭니다.
감상평
이 시를 읽으면 늦가을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선 사람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바쁘게 움직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걸음을 멈추자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발치에서 구르는 잎, 스쳐 가는 그림자, 저녁빛이 짙어지는 산마루가 그러합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는 동안 마음속에 오래 쌓여 있던 감정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걸어온 삶의 애증인가”라는 물음은 지나온 시간을 좋았다거나 힘들었다는 한마디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사랑한 순간과 미워한 순간이 함께 있었음을 조용히 인정합니다.
가장 따뜻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피한 적 없는 / 삶 데리고”입니다. 화자는 삶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살아 낸 자신의 시간을 데리고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때 휴식은 책임을 외면하는 행동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해 온 자신에게 허락하는 잠깐의 멈춤이 됩니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쉬기를 미뤄 온 사람에게 특히 오래 남을 만한 대목입니다.

해설
“자연도 쉬어가잔다”는 자연이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의인화입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생장의 속도가 느려지는 계절의 모습을 화자는 휴식의 권유로 받아들입니다. 자연의 변화가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셈입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뜨락도 이러한 읽기를 돕습니다. 뜨락은 멀리 떠나야만 도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있는 공간입니다. 성찰과 위로가 반드시 특별한 여행이나 큰 사건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의 구름은 가벼움의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삶의 무게를 없애 버린 결과라기보다 잠시 내려놓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은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 대신,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을 인정하고 호흡을 고르도록 이끕니다. 11월을 한 해의 성과를 재촉하는 달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신창홍 「11월」 - 마음으로 먼저 알아차리는 계절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면 11월입니다
바래진 햇살에 냉기가 드리우고
도시에 내려앉은 하오의 그림자는
해풍이 빠져나간 바다의 저녁처럼
낯선 침묵들이 거리를 서성입니다가슴이 먼저 시려오면 11월입니다
화석처럼 메마른 플라타너스 잎새가
아스팔트에 쓸려 비명을 지르며 멀어지고
텅 빈 거리에 남겨진 공허가
낙엽으로 부서지는 가슴을 향합니다마음이 초조해지면 11월입니다
오가는 새들의 날갯짓에
창공의 푸른 멍 자국은 비색으로 번지고
일상으로 흘렸던 작은 쓸쓸함이
눈사람처럼 커지며 마음을 흔듭니다어디에도 갈 곳이 없으면 11월입니다
저무는 것들의 드러낼 수 없는 상흔
가야 하는 마음도
보내야 하는 마음도
모두가 견디기 힘든 아픔입니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신창홍의 「11월」은 같은 문장 형식을 반복하면서 늦가을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깊게 만듭니다. 도시의 거리와 나뭇잎, 하늘의 풍경이 화자의 내면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작품입니다.
- 시인: 신창홍
- 수록 작품: 「11월」
- 중심 소재: 도시의 그림자, 플라타너스 잎, 아스팔트, 새, 낙엽
- 주요 정서: 낯섦, 시림, 초조함, 공허, 이별의 아픔
- 표현의 특징: 각 연의 첫 문장에 반복 구조를 배치하고 감각적인 비유를 사용합니다.

감상평
이 작품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마음의 변화로 11월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익숙한 거리가 낯설어 보이고,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가슴이 시리며, 무엇인가 늦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는 그러한 감정을 쉽게 떨쳐 내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름 붙이기 어려웠던 마음에 11월이라는 이름을 건네줍니다. 독자는 자신의 쓸쓸함이 혼자만의 이상한 감정은 아니라는 데서 작은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상으로 흘렸던 작은 쓸쓸함”이 눈사람처럼 커진다는 표현도 인상적입니다. 평소에는 바쁜 생활에 묻혀 지나갔던 감정이 한 해의 끝이 가까워지자 한꺼번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작은 서운함과 미뤄 둔 슬픔이 어느 순간 큰 덩어리가 되어 마음을 흔드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눈사람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는 여기서 즐거운 겨울 놀이가 아니라, 점점 불어나는 내면의 무게를 나타냅니다.
해설
네 연은 각각 낯섦, 시림, 초조함, 갈 곳 없음이라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감정은 바깥세상이 달라 보이는 수준에서 출발해, 마음이 머물 곳을 잃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반복되는 “11월입니다”는 계절을 설명하는 문장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감정을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이러한 반복이 작품에 일정한 리듬을 주고, 서로 다른 장면을 하나의 정서로 묶습니다.
낙엽이 비명을 지르고 가슴이 낙엽처럼 부서지는 표현에서는 바깥 풍경과 내면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거리의 소리는 마음의 아픔으로 들리고, 계절의 변화는 관계의 상실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에 “가야 하는 마음”과 “보내야 하는 마음”을 나란히 둔 점도 중요합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가운데 한쪽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11월은 이별의 어느 자리에 서 있든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조유리 「시월과 십일월 사이」 - 계절의 경계에 드러나는 균열
거기 절개지가 있다
쫙쫙 찢으며
하던 말, 뚝뚝 끊으며
주소록을 삭제한 얼굴들이
갈라지기 시작한다미간부터 단추를 푸는 동안
매일 있는 일처럼
손발톱은 아무렇지 않게 자라고
하오에 내다 널은 억새에서 바람이 태어나
끝물을 휘젓는다쓸모 있는 것들이 듬성듬성해지고
어디론가 서두르는 이목구비알아볼 수 있는 건
뒷걸음질로 뒷걸음질로 접히는
나잇살뿐, 들고 내릴 수조차 없는한 자루 뒤통수뿐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조유리의 「시월과 십일월 사이」는 계절의 경계를 매끄러운 변화가 아닌 절개와 단절의 이미지로 제시합니다. 신체의 부분과 관계의 흔적이 낯설게 결합하며, 독자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 시인: 조유리
- 수록 작품: 「시월과 십일월 사이」
- 중심 소재: 절개지, 주소록, 미간, 손발톱, 억새, 나잇살
- 주요 정서: 단절, 불안정함, 시간의 압박, 나이 들어감에 대한 자각
- 표현의 특징: 파편적인 신체 이미지와 강한 동작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감상평
이 시에서 시월과 십일월 사이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이 아닙니다. 첫 행부터 절개지가 등장하며 풍경에 날카로운 경계를 만듭니다. 잘려 나간 땅의 단면처럼,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는 평소 감추고 있던 삶의 결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관계가 멀어진 흔적, 끝맺지 못한 말, 나이를 먹으며 달라지는 자기 모습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단풍이나 고요한 낙엽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면 오히려 그 거친 감각 때문에 오래 멈춰 서게 됩니다.
주소록을 삭제하는 일은 일상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연락처를 지운다고 해서 관계의 기억까지 매끄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주소록을 삭제한 얼굴들”이라는 표현은 관계를 정리한 뒤에도 남는 불편한 잔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마음속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손발톱은 아무렇지 않게 자란다는 대목이 묘한 허탈함을 줍니다. 개인의 상실과는 상관없이 몸과 시간은 계속 움직입니다.
해설
“쫙쫙”, “뚝뚝”이라는 말은 단절을 소리와 감각으로 전달합니다. 이어지는 얼굴과 미간, 손발톱, 이목구비, 뒤통수는 온전한 인물의 모습보다 부분적으로 흩어진 신체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이나 타인을 하나의 안정된 모습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지의 연결이 열려 있는 작품이므로, 특정 사건이나 하나의 사연으로 고정해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쓸모 있는 것들이 듬성듬성해지고”라는 문장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여기서 쓸모는 사물의 기능일 수도 있고, 관계 속 역할이나 자신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의 나잇살과 뒤통수는 뜻대로 다룰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을 환기합니다. 시월에서 십일월로 넘어가는 짧은 경계가 이 작품에서는 관계의 변화와 나이 들어감이 드러나는 깊은 틈이 됩니다. 쉽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 대신, 늦가을의 불편하고 날카로운 얼굴을 보여 주는 시입니다.



전태련 「11월의 노래」 - 서로의 거리를 지키며 건너는 겨울
한 발을 낙엽 속에 묻은 채
다른 한 발은 겨울로 가는 차가운 강물에 담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쓸쓸한 11월그래, 11월엔
영혼이 아름다운 그대를 만나고 싶다
맑고 아름다운 영혼이 자신의 짝을 알아보는
영혼이 통하는 그대를 만나보고 싶다
겉모습이 어떻든 영혼의 빛깔이 닮은 사람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도
그 영혼 깊숙이 교감할 수 있는 그대를 만나고 싶다따뜻하고 깊은 영혼이 또 하나의 따스하고 깊은 영혼을 만나
학의 두 다리처럼 적당한 거리를 가진 채
겨울의 강을 건너가는 11월의 오후,
물안개 피어나는
하얀 눈이 덮인 따뜻한 겨울 숲속으로 들고 싶다나무의 몸이 가벼워지고
햇살이 투명하게 빛나는 11월엔
따스한 영혼이 닮은 그대를 만나고 싶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전태련의 「11월의 노래」는 늦가을의 쓸쓸함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으로 이어 갑니다. 반복되는 만남의 소망 속에서 외적인 조건보다 내면의 닮음을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 시인: 전태련
- 수록 작품: 「11월의 노래」
- 중심 소재: 낙엽, 겨울 강물, 영혼, 학의 두 다리, 겨울 숲
- 주요 정서: 그리움, 친밀함에 대한 소망, 따뜻한 동행의 기대
- 표현의 특징: 반복되는 소망의 문장과 계절을 건너는 이미지가 중심을 이룹니다.
감상평
첫 연은 11월의 애매한 자리를 한 사람의 자세처럼 보여 줍니다. 한 발은 낙엽 속에 있고 다른 발은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가을을 떠나지 못했지만 이미 겨울을 느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때에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바람이 더 커집니다. 화자가 기다리는 사람도 겉으로 돋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이 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적당한 거리”입니다. 가까운 관계를 원하면서도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학의 두 다리가 떨어져 있으면서 한 몸의 균형을 이루듯, 동행에도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간격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상대를 붙잡는 관계보다 각자의 온기를 지닌 채 나란히 걷는 관계를 상상하게 합니다.
해설
작품은 쓸쓸한 계절의 경계에서 출발해 따뜻한 겨울 숲을 향합니다. 시작의 강물은 차갑지만 끝부분의 겨울은 반드시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상상이 계절을 받아들이는 감각까지 바꾸기 때문입니다. 하얀 눈이 덮여 있는데도 숲이 따뜻하다는 표현은 물리적인 온도보다 정서적인 온기를 강조합니다.
반복되는 “만나고 싶다”는 시의 제목에 담긴 노래의 성격을 살립니다. 같은 소망이 되풀이될수록 기다림의 방향이 선명해집니다. 또한 잎을 내려놓아 가벼워진 나무와 투명한 햇살은 겉을 꾸미던 것들이 줄어든 뒤의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풍경은 겉모습보다 영혼의 빛깔을 찾는 화자의 태도와 어울립니다. 늦가을 사랑시로 읽을 수 있지만, 연인뿐 아니라 깊이 이해해 주는 벗이나 삶의 동반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세복 「11월을 보내며」 - 스산한 풍경 속에서도 발견하는 넉넉함
깊은 억새 숲의 스산한 소리에도
능선에 앉은 낙조는 요염하다싱그러움도 찰나에 지듯
꽃향기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끝없는 계절이 바뀌어도 피고 진다어스름한 산 아래 홍시가 주렁주렁
주인 인심마저 장독대와 어우러진
후덕한 풍경이다을씨년스런 찬바람에 몸서리쳐도
자연이 준 선물에 만족하며
별을 세며 꿈을 키우리라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조화롭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세상
그 무대에 내가 서 있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제공된 자료에서 靑娥 이세복으로 표기된 시인의 「11월을 보내며」는 쇠락하는 계절 속에서도 풍요와 삶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생활 풍경이 함께 놓여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 시인: 이세복
- 제공 자료의 표기: 靑娥 이세복
- 수록 작품: 「11월을 보내며」
- 중심 소재: 억새 숲, 낙조, 홍시, 장독대, 별
- 주요 정서: 계절의 덧없음, 만족, 감사, 미래에 대한 기대
- 표현의 특징: 스산함과 풍요로움을 대비한 뒤 긍정적인 다짐으로 마무리합니다.
감상평
이 시에는 늦가을의 쓸쓸함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억새 숲에서는 스산한 소리가 들리고, 찬바람에 몸서리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자의 시선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능선의 낙조를 보고, 산 아래의 홍시와 장독대를 바라보며 계절이 남겨 놓은 풍요를 발견합니다. 사라지는 것만 헤아리면 허전한 달이지만, 익어 남은 것까지 살피면 11월의 표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홍시와 장독대는 특히 생활 가까이에서 느끼는 넉넉함을 전합니다. 추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손에 닿을 듯한 풍경이기에 온기가 살아납니다. 거기에 “주인 인심”이 더해지면서 자연의 결실은 사람의 정과 연결됩니다. 계절의 풍요가 열매의 수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함께 누리고 나누는 마음에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설
첫 연의 스산한 소리와 요염한 낙조는 같은 시간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감각입니다. 화자는 늦가을을 하나의 정서로 단순화하지 않고 그 안에서 여러 표정을 발견합니다. 뒤이어 꽃의 짧은 아름다움과 계절의 반복을 함께 제시하면서, 사라짐이 곧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마지막의 “그 무대에 내가 서 있다”는 자연을 바라보던 화자가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대목입니다. 다만 세상이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표현은 모든 현실이 실제로 갈등 없이 돌아간다는 진술보다는, 화자가 선택한 삶의 태도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만족을 찾고 꿈을 키우겠다는 의지입니다. 11월을 보내는 인사나 한 해를 돌아보는 글과 함께 읽으면, 아쉬움을 인정하면서도 다음 시간을 맞이하는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손택수 「11월의 기린에게」 - 쓸모를 묻는 세상에서 전하는 안부
옥탑방의 철제 계단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는지, 여쭙니다
당신은 그 계단이 모딜리아니의 여인
목덜미를 닮았다고 하였지요
그 수척하고 해쓱한 목 끝의 옥탑방은
남하하는 철새들이 바다를 건너기 전
날개를 쉬어갈 수 있도록 일찌감치 불을 끈다고 하였습니다
싸우기 싫어서 산으로 간 고산족의 후예였을까요
어느 가을은 가지를 다 쳐버린 플라타너스에게
초원의 기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흑만 남은 가지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일어난 수피가 얼룩을 닮았기 때문만도 아니었어요.
저는 기린이 울 줄 모른다고 하였지만
우리에겐 저마다 다른 울음의 형식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사이 저는 위장이 늘어나서 갈수록 목도 점점 굵어져 갑니다
반성도 중독성이 되어 덕지덕지 살이 오르고 있습니다
포도의 낙엽들은 이미 마댓자루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치고,
거리마다 등뼈 으스러지는 소리로 탄식하던
몰락의 노래도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사이 지상은 낙엽의 소유권과 실용성을 발견했습니다
낙엽도 쓸모없이 배회할 틈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린이 사는 초원엔 벼락이 드물다고 했던 게 당신이었 던가요
녹슨 철제 계단 밟는 소리가 낙엽 부서지는 소리 같던 거기
치켜올린 목이 사다리로 굳어진 옥탑방, 여쭙니다
철새와 함께 잠을 청하던 가을의 안부를
물방울 하나가 길디긴 물관부를 유성처럼 흘러가던 밤을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손택수의 「11월의 기린에게」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형식 안에 기억과 자기 성찰,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함께 담습니다. 도시의 사물과 동식물의 이미지가 이어지며 하나의 긴 회상을 이룹니다.
- 시인: 손택수
- 수록 작품: 「11월의 기린에게」
- 중심 소재: 옥탑방, 철제 계단, 철새, 플라타너스, 기린, 낙엽
- 주요 정서: 그리움, 연민, 자기반성, 효용 중심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
- 표현의 특징: 상대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과 이미지의 연쇄적인 연결이 두드러집니다.
감상평
이 시의 안부는 “잘 지내십니까”라는 말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향합니다. 화자는 상대가 머물던 공간과 그곳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 철새를 위해 일찍 불을 끄던 옥탑방, 가지를 잘린 나무에게 들려주던 기린 이야기가 한 사람의 모습을 대신 보여 줍니다. 그 사람의 성격을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작은 생명과 상처 입은 풍경을 대하던 태도가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우리에겐 저마다 다른 울음의 형식이 있었을 뿐입니다”는 이 시를 읽으며 오래 머물게 되는 문장입니다. 눈물을 보이거나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타인을 돌보며, 누군가는 사물에 자기 마음을 비추는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합니다. 이 대목은 기린의 실제 생태에 관한 설명으로 읽기보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쉽게 판단했던 화자의 인식이 달라지는 순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설
철제 계단에서 여인의 목덜미로, 다시 기린과 나무의 물관부로 이어지는 이미지에는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외형이 닮았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수척함, 상처, 위로 향하는 움직임, 생명이 지나가는 통로라는 의미가 겹쳐집니다. 그렇게 옥탑방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어떤 삶의 태도를 기억하는 장소가 됩니다.
화자는 그리워하는 상대만 아름답게 묘사하고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위장이 늘어나고 목이 굵어진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변화도 드러냅니다. “반성도 중독성이 되어”라는 구절에서는 반성하는 행위조차 습관이 되어 실제 삶을 바꾸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이 읽힙니다.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말만으로 안도하는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입니다.
낙엽의 소유권과 실용성을 언급하는 부분은 작품의 시야를 사회로 넓힙니다. 낙엽마저 쓸모를 부여받아야 하는 세계에서는 정처 없이 머물거나 천천히 사라질 여유가 줄어듭니다. 이는 낙엽 처리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모든 존재를 효용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의 안부는 결국 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철새를 배려하고 작은 물방울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그러한 감각을 지녔던 자신에게도 건네는 질문이 됩니다.



박수현 「우물, 11월」 - 기억의 깊이를 내려다보는 시간
첨벙, 뒤꼍 우물에 두레박을 부린다
이끼 낀 돌팍에 부딪히는 두레박 소리가
이적 저지른 죄들이 늑골을 타고 수직 낙하한다
흑백의 기억이 물방울을 튕기며
동심원을 그리는 그곳두레박 속엔 노루꼬리 햇살 한 줌과
삭아 잎맥뿐인 상수리 잎새 몇 장뿐
여름은 적도의 스콜처럼 성급했고
지퍼를 목까지 올린 가을은
잰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당도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낯선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겨울은 왜 더 멀리 돌아가서 맞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저 성글어진 나무 우듬지에 가닿는 새소리를 듣거나
겨울이 데리고 올 이야기의 페이지나 무심하게 넘기며
물끄러미, 달의 뒷면을 비끼는 두레박을 바라보았다
현관 밖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가는 신문지 더미처럼
이제 우물은 가물어서
아무도 두레박을 던지러 오지 않을 것이다먼 곳으로 가는 새떼들이 하늘 어디쯤을 건너는지
죄지은 듯 십일월의 이마를 짚어본다
내가 신열을 앓는다
시인 프로필과 작품의 특징
박수현의 「우물, 11월」은 우물과 두레박을 중심으로 기억과 계절의 흐름을 펼쳐 놓습니다. 소리로 시작한 장면이 마음속 깊은 곳을 향하고, 마지막에는 몸의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 시인: 박수현
- 수록 작품: 「우물, 11월」
- 중심 소재: 우물, 두레박, 햇살, 상수리 잎, 신문지, 새떼
- 주요 정서: 회한, 쓸쓸함, 소진,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망설임
- 표현의 특징: 청각적 도입, 계절의 의인화, 내면과 신체 감각의 연결이 나타납니다.
감상평
이 시의 우물은 물을 길어 올리는 장소이면서 기억을 내려다보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두레박이 부딪히는 소리는 잠잠하던 마음을 흔들고,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물결처럼 번집니다. 그러나 두레박 속에 담긴 것은 넉넉한 물보다 짧은 햇살과 삭은 잎의 흔적입니다. 무엇인가를 되찾으려 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잔해뿐인 듯한 허전함이 전해집니다.
“겨울은 왜 더 멀리 돌아가서 맞고 싶은 것일까”라는 물음은 늦가을의 망설임을 잘 보여 줍니다. 반드시 겨울 자체가 싫다는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또 한 계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 준비되지 않은 채 다음 시간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여름은 성급하게 지나갔고 가을도 잰걸음으로 사라졌는데, 마음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계절은 앞으로 가지만 감정은 지나온 자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 합니다.
해설
두레박이 내려가는 수직의 움직임과 물 위에 퍼지는 동심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억의 작용을 보여 줍니다. 기억은 마음 깊이 가라앉기도 하고, 작은 계기에서 시작해 주변으로 번져 나가기도 합니다. 여름과 가을,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한 장면 안에 놓이면서 과거와 현재, 가까운 미래도 겹쳐집니다. 11월은 이 여러 시간이 동시에 의식되는 경계가 됩니다.
가물어 가는 우물과 쌓여 가는 신문지는 쓰임과 관심이 줄어든 사물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를 정서적인 소진이나 단절의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특정한 사연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는 우물이 마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 앞에 선 화자의 상태를 드러내는 데 집중합니다.
마지막 두 행에서는 십일월과 화자의 경계가 다시 흐려집니다. 십일월의 이마를 짚었는데 신열을 앓는 것은 화자 자신입니다. 계절의 상태를 살피던 손길이 결국 자기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의 11월은 바깥 풍경을 관찰하는 달이면서, 아직 정리하지 못한 회한과 피로를 자신의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11월의 시 모음을 함께 읽는 감상 포인트
여덟 편의 작품을 나란히 읽으면 11월이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낙엽과 바람, 짧아진 햇살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작품마다 달라집니다. 어떤 시에서 낙엽은 시린 가슴과 닮았고, 다른 시에서는 가벼워진 나무의 몸을 보여 줍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쓸모없이 떠돌 자유마저 잃은 존재가 됩니다. 같은 소재라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열립니다.
작품의 차이를 기억하며 다시 읽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곁들일 수 있습니다.
- 이원문 「11월」: 다가오는 추위는 어떤 과거의 감각을 되살리고 있습니까?
- 유영서 「십일월의 뜨락에서」: 삶을 데리고 쉰다는 말은 어떤 휴식을 뜻합니까?
- 신창홍 「11월」: 각 연이 시작될 때 화자의 감정은 어떻게 깊어집니까?
- 조유리 「시월과 십일월 사이」: 계절의 경계가 왜 절개지로 표현되었을까요?
- 전태련 「11월의 노래」: 깊이 통하는 관계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세복 「11월을 보내며」: 화자는 차가운 풍경 속에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 손택수 「11월의 기린에게」: 안부를 묻는 말에는 어떤 자기 성찰이 담겨 있습니까?
- 박수현 「우물, 11월」: 우물에 내려간 두레박은 물 이외에 무엇을 길어 올립니까?
시를 읽을 때 모든 구절을 하나의 정답으로 바꾸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에 남는 장면을 먼저 붙잡고, 그 장면이 앞뒤의 표현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천천히 살펴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쓸쓸하게만 읽혔던 작품에서 나중에는 따뜻함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아름답게 느꼈던 표현에서 삶의 불편한 진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품에 없는 사연까지 사실처럼 덧붙이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낭독할 때는 시의 행갈이와 문장의 흐름을 함께 살피면 좋습니다. 짧은 행이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멈춤과 여백이 감정을 만들고, 긴 문장이 흐르는 작품에서는 기억이 연결되는 호흡이 중요해집니다. 특히 반복되는 문장은 처음과 마지막에 어떤 무게로 들리는지 비교해 볼 만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그 사이에 어떤 장면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 저마다 다른 11월을 이해하는 시의 시간
11월의 시 모음은 단순히 늦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문장을 모아 놓은 목록을 넘어섭니다. 이원문의 작품에서는 몸에 남은 추위와 허기를, 유영서의 작품에서는 쉬어 갈 자리를, 신창홍의 작품에서는 마음을 흔드는 공허를 만나게 됩니다. 조유리는 계절의 경계에 드러난 균열을 보여 주고, 전태련은 서로의 거리를 지키는 동행을 꿈꿉니다. 이세복은 남아 있는 풍요를 발견하며, 손택수는 잊혀 가는 삶의 감각에 안부를 묻습니다. 박수현은 깊은 우물을 내려다보듯 지나온 시간을 살핍니다.
이 작품들은 11월을 반드시 아름답게 견뎌야 한다거나,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모든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같은 바람을 맞아도 누군가는 과거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다음 만남을 기다립니다. 서로 다른 시를 읽는 일은 그처럼 서로 다른 삶의 온도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낙엽이 지는 길에서, 해가 짧아진 오후에, 한 해의 끝이 문득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저녁에 이 시들을 다시 펼쳐 보셔도 좋겠습니다. 모든 작품을 한 번에 이해하기보다 오늘의 마음에 닿는 한 구절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구절이 지나온 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하고,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에도 작은 여백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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