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노 별세 프로필 전 포스코 회장
한국 철강 산업의 역사에서 포항제철, 그리고 오늘날의 포스코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거대한 기업의 성장 서사 뒤에는 잘 알려진 인물들뿐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며 기초를 다진 숨은 주역들이 존재합니다. 황경노 전 포스코 회장은 바로 그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고 황경노 회장은 포항제철 창립 초기부터 핵심 실무 책임자로 참여해 경영의 뼈대를 세웠고, 이후 제2대 회장에 올라 기업의 안정과 효율을 동시에 추구한 경영자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2025년 12월 12일, 향년 96세로 별세한 그의 소식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산업화 1세대의 한 축이 역사 속으로 퇴장했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삶과 경영 행보를 되짚는 일은 포스코라는 기업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황경노 포스코 회장 프로필
황경노 전 회장은 ‘포항제철을 설계한 관리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대중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제철소 건설과 운영이 동시에 진행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조직과 재무, 기획을 총괄하며 회사의 기본 틀을 완성한 핵심 인사였습니다.



기본 황경로 회장 프로필 인적 사항 및 주요 이력
- 출생연도: 1929년
- 별세일: 2025년 12월 12일
- 향년: 96세
- 주요 직책: 포항제철 초대 기획관리부장, 포항제철 상무이사, 동부산업 최고경영자, 제철엔지니어링 최고경영자, 포항제철 부회장, 포스코 제2대 회장
- 대표적 역할: 창립 초기 경영 시스템 구축, 자금 조달 및 법 제도 기반 마련, 비용 효율 중심 경영 체계 확립
포항제철 창립과 초기 역할
1968년 포항제철이 출범하던 당시, 한국은 중화학 공업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제철소 건설은 기술적 난이도뿐 아니라 막대한 자금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황경노는 이 시기에 초대 기획관리부장을 맡아 회사의 행정, 재무, 기획 전반을 총괄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실무 책임자를 넘어, 제철소가 실제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와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부와 국회를 오가며 철강공업육성법 제정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 정책의 핵심을 구성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설득과 조율 능력이 없었다면 제철소 건설은 더 큰 난관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포항의 척박한 환경에서 제철소 건설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행정적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성장기 경영 참여와 조직 안정화
포항제철이 점차 생산 기반을 갖추고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황경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1972년 상무이사로 승진한 그는 경영 전반을 폭넓게 관리하며 회사가 무리한 확장 대신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도록 조율했습니다. 당시 철강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자금 운용과 조직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는 비용 관리와 재무 건전성을 중시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회장으로 복귀했을 때 더욱 체계적인 경영 전략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퇴사와 외부 경영 경험
1977년, 황경노는 포항제철을 떠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으나, 이후 그의 경영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동부산업과 제철엔지니어링에서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며, 다른 조직 문화와 산업 환경 속에서 경영 경험을 확장했습니다.
이 시기의 행보는 안정된 자리를 고수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결정으로 해석됩니다. 철강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히고, 다양한 경영 방식을 체득한 경험은 이후 포항제철로 돌아왔을 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복귀와 제2대 회장 취임

1990년 상임고문으로 포항제철에 복귀한 황경노는 부회장을 거쳐 1992년 제2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이 시기의 포항제철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글로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최소 비용, 최고 효율’이라는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 원칙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핵심 경쟁력에 자원을 집중하자는 전략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선공후사’라는 가치관을 강조하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와 국가에 환원되는 구조를 중시했습니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포스코가 이후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 구조와 조직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경영 철학과 장기적 영향

황경노의 경영 철학은 효율성과 공동체 의식을 동시에 강조하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포스코의 성공을 개인의 성과로 환원하기보다는, 국가 경제 발전과 후진 양성의 결과로 인식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경영연구소 회장 등 자문 역할을 맡아,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조언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발언과 정책을 종합해 보면, 철강 산업을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니라 국가 산업의 근간으로 인식했던 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ESG 경영이나 사회적 책임 논의와도 맞닿아 있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구적인 접근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황경노 별세와 회사장의 의미
2025년 12월 12일, 포스코홀딩스는 황경노 전 회장의 별세 소식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 결정은, 그가 포스코와 한국 철강 산업에 남긴 공로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철강 업계와 후배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그의 별세를 두고 ‘한 시대의 마무리’라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96세까지 비교적 장수한 그의 삶은, 원칙적이고 절제된 생활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는 화려함보다는 실질을 중시했고, 말보다 시스템을 통해 경영 철학을 남긴 인물로 기억됩니다.
결론
황경노 전 포스코 회장의 삶은 한국 철강 산업의 성장 과정과 궤를 같이합니다. 창립 초기의 혼란기부터 세계 시장을 향한 도약기까지, 그는 항상 조직의 중심에서 보이지 않는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별세는 아쉽지만,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제도적 유산은 여전히 포스코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안정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했던 그의 선택들은, 오늘날 기업 경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황경노 전 회장은 떠났지만, 그가 설계한 시스템과 정신은 한국 산업사 속에서 계속해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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