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현종 가계도, 장희빈 아들 경종 가계도
조선의 중후기 정치는 ‘왕권 강화와 붕당 정치의 대립’으로 대표됩니다. 특히 숙종·현종·경종의 시대는 이 복잡한 정치 구도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이 세 국왕은 모두 직계 부자 관계로 이어지며, 조선 왕조의 중추적 전환기를 형성했습니다. 현종은 효종의 장남으로 즉위하여 왕실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그의 외동아들 숙종은 환국 정치 속에서도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습니다.

숙종의 장남 경종은 짧은 재위 기간 동안 혼란한 세력을 수습하지 못했지만, 그의 치세는 곧 영조의 즉위로 이어져 조선 정치의 균형을 재정립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숙종, 현종, 경종 세 왕의 가계도를 중심으로 혈통적 연속성과 정치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현종 가계도
현종(顯宗, 1641~1674)은 조선 제18대 왕으로, 휘는 이연(李棩)입니다.


효종의 장남으로 태어나, 효종 사후 1659년에 즉위했습니다. 그의 즉위는 ‘기해예송’이라 불리는 예학 논쟁과 함께 시작되어, 조선 사회의 정치·사상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종의 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왕: 효종(孝宗, 1619~1659)
- 모후: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9~1674)
- 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1684)
- 자녀: 숙종(肅宗, 이순) 단 1인

현종은 효종의 북벌 의지를 계승하고자 했지만, 청과의 현실적 외교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예송 논쟁으로 인해 서인과 남인의 갈등이 격화되었으며,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학문적 식견과 온건한 성품으로 왕실의 도덕성과 유교적 질서를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현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바로 적통의 안정이었습니다. 왕비 명성왕후 김씨가 아들을 낳지 못하던 시절 여러 후궁이 있었으나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고, 결국 숙종 한 명만을 왕세자로 남기면서 조선 왕위의 정통 계승이 흔들림 없이 이어졌습니다.
현종의 짧은 재위 기간(15년) 동안 국정의 큰 변혁은 없었지만, 안정된 왕위 계승 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이후 숙종 대에 이르러 조선은 정치적 격변기를 맞게 되지만, 그 중심에는 현종의 안정된 혈통 기반이 자리했습니다.
조선 숙종 가계도
숙종(肅宗, 1661~1720)은 조선 제19대 왕으로, 휘는 이순(李焞)입니다.


그는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왕위는 1674년 아버지 현종의 승하 후에 계승하였으며, 즉위 당시 나이는 14세였습니다. 숙종의 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부왕: 현종(顯宗, 1641~1674)
- 모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1684)
- 정비: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 1661~1680)
- 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1667~1701)
- 후궁: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1701),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1718), 명빈 박씨 등


숙종은 여러 왕비와 후궁을 두었으나,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인현왕후 민씨와 희빈 장씨였습니다. 인현왕후는 명문 민씨 가문의 딸로 왕권 안정의 상징이었으며, 희빈 장씨는 남인 세력을 등에 업고 왕세자(경종)를 낳아 세자 책봉을 이끌어냈습니다. 숙종의 주요 자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장남: 경종(景宗, 장씨 소생, 1688~1724)
- 차남: 영조(英祖, 최씨 소생, 1694~1776)
- 삼남: 연령군(延齡君, 박씨 소생, 1699~1719)



숙종의 치세는 왕권 강화를 위한 환국 정치의 반복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남인·서인·노론·소론이 번갈아 권력을 잡았고, 숙종은 이들의 세력 다툼을 능숙하게 이용했습니다. 1689년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삼았으나, 1694년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갑술환국’을 단행하며 서인 세력을 부활시켰습니다. 숙종은 혼란 속에서도 국가 기반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와의 외교를 안정시켰습니다. 그의 사후에는 장남 경종이 즉위하며 왕통이 이어졌습니다.
조선 경종 가계도
경종(景宗, 1688~1724)은 조선 제20대 왕으로, 숙종과 희빈 장씨의 장남입니다.


휘는 윤(昀)이며, 본래 왕세자 시절 ‘세자 이윤’으로 불렸습니다. 어머니 희빈 장씨가 정치적으로 남인 세력을 대표했기 때문에, 그의 즉위 과정과 치세는 곧 정치 세력 간의 대립사로 이어졌습니다.
경종의 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왕: 숙종(肅宗, 1661~1720)
- 모후: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1701)
- 비: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1686~1718)
- 후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 1705~1730)
- 자녀: 없음

경종은 즉위 당시 이미 병약했으며, 왕권보다는 신하들의 정치적 갈등이 국정을 좌우했습니다. 그의 즉위 초기에는 남인과 소론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당시 연잉군)가 왕세제에 책봉되면서 노론이 부상했습니다. 이 시기 ‘신임사화(辛壬士禍)’가 발생하여 수많은 노론이 탄압을 받았습니다. 경종은 자신의 이복동생 연잉군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긴장감을 느꼈고, 이는 결국 조선의 붕당 대립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경종의 짧은 재위 4년 동안에는 경제적·정치적 성과보다 혼란이 컸습니다. 그러나 사후 그 뒤를 이은 영조는 탕평책을 내세워 붕당 갈등을 완화시키고, 경종 시대의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경종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는 숙종의 차남인 영조에게 넘어갔고, 이로써 조선 왕조는 다시 안정세를 되찾게 됩니다.
경종의 능은 양주 천장산 자락의 의릉(懿陵)에 자리하며, 단의왕후와 합장되어 있습니다. 의릉은 숙종·영조의 능과 함께 조선 후기 왕실의 계보적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적입니다.
결론
조선 숙종, 현종, 경종 세 왕은 한 혈통으로 이어진 부자 3대의 왕으로, 조선 후기 정치의 축을 이뤘습니다. 현종은 예학 중심의 안정된 정통을 세웠고, 숙종은 왕권 강화와 붕당 정치의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경종은 혼란스러운 정치 속에서도 왕위의 정통성을 유지했으나, 단명으로 인해 영조에게 왕권이 이어졌습니다. 이 부자 3대는 모두 적통 계승이라는 점에서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왕위 승계의 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그들의 시대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유교적 질서, 왕권의 권위, 그리고 민생 안정이라는 조선의 근본 가치가 유지된 시기였습니다. 숙종의 환국 정치, 현종의 예송 논쟁, 경종의 신임사화는 모두 정치적 격변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 왕조의 통치 체계를 강화하는 교훈적 역사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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